[Story D]피사로처럼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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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한 화가의 삶

파리의 한 호텔 창가에 앉아 있는 노(老) 화가는 흐릿해진 눈으로 연신 밖을 바라봅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찌푸려진 주름살은 얼마나 깊이 집중하고 있는지를 말해 줍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관절 마디가 쑤시는 듯 통증이 있지만, 앞에 놓인 캔버스에 붓질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피사로가 말년에 그린 연작 중 하나입니다. 화가 카미유 피사로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러했듯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고, 특히 자연과 농촌의 삶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눈병과 노쇠한 체력으로 인해 야외 작업이 어려워졌고, 이후엔 호텔 창가에 앉아 파리 거리의 풍경을 자주 그리게 되었죠.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말년에 창밖을 바라보며 그린 이 연작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피사로는 평생 가난한 화가의 삶을 살았고, 말년에 이르러서야 회고전과 작품 판매를 통해 어느 정도 안정이 생겼지만, 그가 꿈꿨던 풍요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스캔들이 없었고, 화려한 삶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젊은 나이에 요절하지도 않았습니다. 한 여인과 평생을 사랑했고, 자녀들과 함께 가난하고 긴 시간을 묵묵히 견뎌냈으며, 작은 행복 속에서 인생의 기쁨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

피사로는 인상주의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물론, 미술사 속에서는요. 고흐, 모네, 르누아르 같은 유명한 화가들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는 매우 낮습니다. 실제로 미술 시장에서 그의 작품은 인기 작가들에 비해 약 1/10 수준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소장 수량도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의 그림 대부분은 개인 수집가보다 박물관, 갤러리, 교육 기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죠.

그런데도 미술사에서는 피사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잔, 고갱, 모네, 르누아르 등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수많은 후배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당시 어린 화가들은 피사로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작업실에서 철학을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을 정도로 그는 훌륭한 인품과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훗날 세잔은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고 하죠.

“그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의 침착함은 나에게 나침반이었다.”


그의 삶을 알고 난 후라면, 그의 작품은 다른 빛을 가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피사로의 작품은 기교적으로 뛰어나거나, 실험적이거나, 충격적인 면은 찾기 어렵습니다. 당시 파리의 도시적 삶이 인기를 끌던 시기에도 그는 오히려 자연과 시골 풍경을 고집했죠. 하지만 그의 삶을 알고 난 후에 그의 그림을 바라보면,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침서처럼 느껴집니다.

그의 아내는 어머니의 하녀였지만, 진실한 사랑이라 믿었기에 가족의 극심한 반대에도 결혼을 강행했고, 결국 가족들과 절연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그녀와 함께 8명의 자녀를 낳아 평생을 함께 했습니다. 대중에게 큰 인기가 없어 항상 궁핍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믿음 으로 묵묵히 그림을 완성해갔습니다.

그의 인품은 동료들의 증언뿐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한 삶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아내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함께 유지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였고,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 중 6명이 화가로 성장했다고 하죠. 피사로의 가정이 얼마나 화목했을지 상상이 되시나요?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

말년에는 회고전이 성공적으로 열리고, 작품 판매도 이루어져 비교적 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오늘날 그의 이름은 학술적인 문맥에서만 언급될 뿐 스캔들이나 자극적인 일화를 가진 인물은 아니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불행한 삶을 살았을까요? 아마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화가의 길을 걷는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고, 포기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지켜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늘 그를 존경하고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한 명의 화가이자 남편, 아버지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말년에 눈병으로 시력이 약해지고 몸을 움직이기 어려웠던 시기에도 그는 호텔 창가에서 끝까지 작품을 완성하며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피사로는 과연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아마도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붓으로 삶을 기록한 날들이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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