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 Life]일월수목원에서의 아무것도 하지 않기

일월수목원에서 수확한 행운 한 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정신없이 몰아치다 보면 머릿속이 엉켜버릴 때가 있습니다.
쓸데없는 걱정,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이 마치 강바닥의 흙처럼 올라와 시야를 흐리죠.
그럴 땐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잠깐 바깥으로 나가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주 향하는 곳은, 바로 일월수목원입니다.

수원에 새로 생긴 이 식물원은 공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흔한 정원도 아닙니다.
“식물원?” 하고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지만, 막상 가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조용하고 잘 정돈된 공간을 만나는 건 흔치 않거든요.

평일엔 사람도 많지 않아, 마치 나만을 위한 공간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방문자센터의 커다란 창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은,
어릴 적 기억 속 식물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에요—세련되고, 차분하고, 어딘가 단단한 느낌.
날씨가 좋지 않 날엔 그냥 그 창가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식물원 안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식물을 찾아다니지도 않고, 사진을 찍지도 않아요.
그저 나무와 풀이 잘 보이는 벤치 하나를 골라 앉아,
1~2시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죠.

핸드폰도 꺼두고, 음악도 듣지 않고, 명상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앉아서, 눈앞의 식물들을 바라보는 것뿐이에요.
그게 뭐냐고요? 글쎄요—그게 바로 행운입니다.

놀랍게도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평소엔 지나쳤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 규칙을 가진 듯 움직이는 나뭇잎,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공간을 스치듯 지나가는 새들까지.
그 모든 것이, 마치 “지금은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 보면, 머릿속을 흐리던 것들이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해야 할 일만 남고, 아이디어가 들어올 자리가 생기죠.
논리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지만—그저 우연히 얻은 행운 같은 경험이에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모든 걸 더 빠르게 움직이게 하는 기분이랄까요.


식물원은 행운을 수확하는 장소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곳에 앉아 바람을 느끼고 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 내가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갑자기 찾아오는 행운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작은 행운을 찾아 나서는 게 훨씬 기분 좋잖아요.

프리랜서로 살아간다는 건, 일과 삶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 감정과 몸 상태가 작업물에 그대로 스며들기 때문에,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그래서 저는 자주, 작은 행운을 찾아 나섭니다.

디자인이라는 건 단순히 아이디어와 손으로만 하는 일이 아니에요.
그 전에 마음과 몸을 정돈하고, 아이디어가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야 하죠.
그리고 일월수목원은 그 공간을 가장 조용하고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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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일월수목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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